김아연 교수, 도시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조경의 상상력
작성자
조경학과
작성일
2025-09-12 13:42
조회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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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환경과 조경]
“조경은 단순한 공간 설계를 넘어 도시의 삶과 문화를 짓는 작업”

올해 4월, 선유도공원에 ‘그림자 아카이브’라는 공공미술 작품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7월, 수성국제프리비엔날레에서 그 작품의 작가와 다시 만났다. 김아연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다. 그는 한국조경학회 교육포럼을 이끌고 있으며, 국토교통부의 수탁과제인 ‘조경 비전 2050’의 연구 총괄을 맡고 있다. 서로 다른 현장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 인물에게 ‘조경’이 예술·정책·연구를 넘나드는 힘을 어떻게 발휘하는지 물었다.
조경, 예술과 제도의 경계에서
“조경은 단순히 공간을 설계하는 일을 넘어, 도시의 삶과 문화를 짓는 작업이기도 하다.”
김아연 교수(스튜디오테라 대표)는 도시의 경계에서 조경을 다시 사유해 왔다. 어린이놀이터, 국가유산, 도시와 자연의 접경지대 등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장소들을 실험적인 프로젝트로 복원하고 연결해 온 그의 작업은, 조경이 사회적 감수성과 예술적 상상력을 어떻게 품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김아연 교수는 조경의 출발점을 ‘상상력’이라고 말한다. “제가 설계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상상하는 즐거움 덕분입니다. 설계는 지금이 아닌, 더 나은 ‘지양된 공간’을 지향하는 데서 시작하죠. 이 공간에 ‘어떤 사연을 가진 사람이 올까?’, ‘여기에 와서 무엇이 보고 싶을까?’ 같은 소설적 상상과, 이 공간이 줄 수 있는 영감 그리고 감동을 탐구하는 시적 상상이 모두 필요합니다.”
김 교수는 제도적 상상력에 대한 관심도 많다. 흔히 정책과 제도는 딱딱하고 기계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창의적인 행정과 정책이 만들 수 있는 근본적인 힘과 가능성을 목격하고 실감하기 때문이다. 설계적 상상력의 근본을 좇아가다 보면 정책적 상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이런 이질적인 상상 작업은 고되면서 즐겁다고. 김아연의 조경은 관찰과 스토리가 만나 펼쳐지는 장면과 같다. 그 상상은 느리고 단단하게 도시의 풍경을 바꾸어 놓는다.
‘그림자 아카이브’는 이러한 감각을 잘 보여준다. 김 교수는 시아노타입(청사진) 기법과 선유 몬스터(애니매이션 캐릭터)를 매개로 선유도 생태계의 기억을 아카이빙했다. 이 작업은 숲의 수직성과 정수장 구조물의 수평성을 병풍 형태로 연출해, 선유도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모습 위에 그림자처럼 겹쳐지는 감각을 시각화했다.
“수생식물원 맞은편에 서서 경치를 바라보면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 가보면 펜스가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죠. 그 펜스를 없앤다면 어떤 장면이 가능할까를 상상하며 시작한 작업이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경계에 있다. 그는 자연과 인공, 예술과 기술, 수직과 수평 사이의 긴장을 탐색하고, 그 중간지점의 관계와 여백을 탐구한다. 그가 그리는 조경은 단순히 아름다운 장면을 넘어, 사람들이 점유하고 정서가 머물 수 있는 ‘쓸모 있는 공간’이 된다.
2026 수성국제비엔날레: 조경감독으로서의 시선
‘2026 수성국제비엔날레’의 공동 예술감독이자 조경감독을 맡은 김 교수는 이번 프로젝트를 “감동적이고도 책임이 무거운 자리”라고 표현했다. 주변인이었던 조경이 도시를 만드는 주체로서 건축과 동등한 전문성으로 인정받게 된 중요한 변곡점이며, 혁신적인 기획으로 도시의 경쟁력을 함께 만들어 갈 건축감독과 수성비엔날레 팀, 조직위원회에게 감사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리빙그라운드(Living Ground)’다. 김 교수는 이를 생명이 깃든 땅 , 혹은 생태계로서의 도시로 해석한다. “어떤 분야가 ‘리빙’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곧 분야의 성격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있는 땅’은 조경의 본질이기도 하죠.” 수성국제비엔날레는 도시에서 생명력을 어떻게 회복하고 연결할 수 있을지를 묻는 실험장이며, 조경은 그 물음을 가장 직접적으로 다룰 수 있는 분야다.
김 교수는 ‘리빙’을 인간 중심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와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풍경’으로 바라본다. 도시는 인간만의 공간이 아니라 고양이, 새, 곤충 등 다양한 존재가 드나드는 살아 있는 터전이며, 조경은 이 모든 생명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구조와 질서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그에게 조경은 ‘쓸모’와 ‘감동’이 공존하는 곳이며, 좋은 공간이란 ‘점유할 수 있는 예술’이다. 쉬고 앉고 걷고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생명체의 살 곳이 되어주는 동시에 감각적 경험과 정서적 감동을 주는 도시의 여백을 조경이 만들어 왔다고 믿는다. 그는 비엔날레를 통해 수성구라는 ‘리빙그라운드’의 예술적 체험과 도시의 활력을 여러 작가들과 함께 만들어가려고 한다.
그는 시민 참여 프로그램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모든 생명에게 집은 필요하잖아요. 아이들과 함께 새집, 곤충 호텔, 겨울나기집 등 그들만의 아지트를 만들며 건축과 조경을 통해 ‘함께 산다’는 것을 공감해 보고 싶습니다. 아직 구상 단계지만, 이런 시도를 통해 시민들이 도시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고 그 속에서 상상력과 감수성을 키워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경의 다음 장면을 상상하다
김아연에게 조경은 단순한 ‘설계’나 ‘디자인’의 영역을 넘어선다. 오랫동안 조경은 기능과 형태 사이를 오가며 도시의 틀을 다듬어왔지만, 김 교수는 그 틀을 유연하게 비틀고 그 바깥을 사유하는 조경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색해 왔다.
그는 실현 가능한 설계뿐 아니라, 조경적 사고의 확장도 중요하다고 본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각의 힘이 중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지어지지 않더라도 조경은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세계를 상상하게 하는 ‘문학적 공간’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언젠가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을 그려낸 상상의 정원들을 언젠가 하나의 연작으로 엮어내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다. 물리적 공간에 실제로 구현되지 않아도 누군가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다면, 그것도 조경이라고 믿는다.
김아연의 작업을 따라가다 보면 ‘조경예술가’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그의 작업은 뚜렷한 맥락을 품고 있으면서도 열린 결말처럼 사유의 자리를 남겨둔다. ‘상상의 힘’을 믿는 그는, 지금도 다음 장면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환경과조경 김하현 기자
“조경은 단순한 공간 설계를 넘어 도시의 삶과 문화를 짓는 작업”

올해 4월, 선유도공원에 ‘그림자 아카이브’라는 공공미술 작품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7월, 수성국제프리비엔날레에서 그 작품의 작가와 다시 만났다. 김아연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다. 그는 한국조경학회 교육포럼을 이끌고 있으며, 국토교통부의 수탁과제인 ‘조경 비전 2050’의 연구 총괄을 맡고 있다. 서로 다른 현장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 인물에게 ‘조경’이 예술·정책·연구를 넘나드는 힘을 어떻게 발휘하는지 물었다.
조경, 예술과 제도의 경계에서
“조경은 단순히 공간을 설계하는 일을 넘어, 도시의 삶과 문화를 짓는 작업이기도 하다.”
김아연 교수(스튜디오테라 대표)는 도시의 경계에서 조경을 다시 사유해 왔다. 어린이놀이터, 국가유산, 도시와 자연의 접경지대 등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장소들을 실험적인 프로젝트로 복원하고 연결해 온 그의 작업은, 조경이 사회적 감수성과 예술적 상상력을 어떻게 품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김아연 교수는 조경의 출발점을 ‘상상력’이라고 말한다. “제가 설계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상상하는 즐거움 덕분입니다. 설계는 지금이 아닌, 더 나은 ‘지양된 공간’을 지향하는 데서 시작하죠. 이 공간에 ‘어떤 사연을 가진 사람이 올까?’, ‘여기에 와서 무엇이 보고 싶을까?’ 같은 소설적 상상과, 이 공간이 줄 수 있는 영감 그리고 감동을 탐구하는 시적 상상이 모두 필요합니다.”
김 교수는 제도적 상상력에 대한 관심도 많다. 흔히 정책과 제도는 딱딱하고 기계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창의적인 행정과 정책이 만들 수 있는 근본적인 힘과 가능성을 목격하고 실감하기 때문이다. 설계적 상상력의 근본을 좇아가다 보면 정책적 상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이런 이질적인 상상 작업은 고되면서 즐겁다고. 김아연의 조경은 관찰과 스토리가 만나 펼쳐지는 장면과 같다. 그 상상은 느리고 단단하게 도시의 풍경을 바꾸어 놓는다.
‘그림자 아카이브’는 이러한 감각을 잘 보여준다. 김 교수는 시아노타입(청사진) 기법과 선유 몬스터(애니매이션 캐릭터)를 매개로 선유도 생태계의 기억을 아카이빙했다. 이 작업은 숲의 수직성과 정수장 구조물의 수평성을 병풍 형태로 연출해, 선유도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모습 위에 그림자처럼 겹쳐지는 감각을 시각화했다.
“수생식물원 맞은편에 서서 경치를 바라보면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 가보면 펜스가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죠. 그 펜스를 없앤다면 어떤 장면이 가능할까를 상상하며 시작한 작업이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경계에 있다. 그는 자연과 인공, 예술과 기술, 수직과 수평 사이의 긴장을 탐색하고, 그 중간지점의 관계와 여백을 탐구한다. 그가 그리는 조경은 단순히 아름다운 장면을 넘어, 사람들이 점유하고 정서가 머물 수 있는 ‘쓸모 있는 공간’이 된다.
2026 수성국제비엔날레: 조경감독으로서의 시선
‘2026 수성국제비엔날레’의 공동 예술감독이자 조경감독을 맡은 김 교수는 이번 프로젝트를 “감동적이고도 책임이 무거운 자리”라고 표현했다. 주변인이었던 조경이 도시를 만드는 주체로서 건축과 동등한 전문성으로 인정받게 된 중요한 변곡점이며, 혁신적인 기획으로 도시의 경쟁력을 함께 만들어 갈 건축감독과 수성비엔날레 팀, 조직위원회에게 감사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리빙그라운드(Living Ground)’다. 김 교수는 이를 생명이 깃든 땅 , 혹은 생태계로서의 도시로 해석한다. “어떤 분야가 ‘리빙’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곧 분야의 성격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있는 땅’은 조경의 본질이기도 하죠.” 수성국제비엔날레는 도시에서 생명력을 어떻게 회복하고 연결할 수 있을지를 묻는 실험장이며, 조경은 그 물음을 가장 직접적으로 다룰 수 있는 분야다.
김 교수는 ‘리빙’을 인간 중심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와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풍경’으로 바라본다. 도시는 인간만의 공간이 아니라 고양이, 새, 곤충 등 다양한 존재가 드나드는 살아 있는 터전이며, 조경은 이 모든 생명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구조와 질서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그에게 조경은 ‘쓸모’와 ‘감동’이 공존하는 곳이며, 좋은 공간이란 ‘점유할 수 있는 예술’이다. 쉬고 앉고 걷고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생명체의 살 곳이 되어주는 동시에 감각적 경험과 정서적 감동을 주는 도시의 여백을 조경이 만들어 왔다고 믿는다. 그는 비엔날레를 통해 수성구라는 ‘리빙그라운드’의 예술적 체험과 도시의 활력을 여러 작가들과 함께 만들어가려고 한다.
그는 시민 참여 프로그램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모든 생명에게 집은 필요하잖아요. 아이들과 함께 새집, 곤충 호텔, 겨울나기집 등 그들만의 아지트를 만들며 건축과 조경을 통해 ‘함께 산다’는 것을 공감해 보고 싶습니다. 아직 구상 단계지만, 이런 시도를 통해 시민들이 도시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고 그 속에서 상상력과 감수성을 키워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경의 다음 장면을 상상하다
김아연에게 조경은 단순한 ‘설계’나 ‘디자인’의 영역을 넘어선다. 오랫동안 조경은 기능과 형태 사이를 오가며 도시의 틀을 다듬어왔지만, 김 교수는 그 틀을 유연하게 비틀고 그 바깥을 사유하는 조경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색해 왔다.
그는 실현 가능한 설계뿐 아니라, 조경적 사고의 확장도 중요하다고 본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각의 힘이 중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지어지지 않더라도 조경은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세계를 상상하게 하는 ‘문학적 공간’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언젠가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을 그려낸 상상의 정원들을 언젠가 하나의 연작으로 엮어내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다. 물리적 공간에 실제로 구현되지 않아도 누군가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다면, 그것도 조경이라고 믿는다.
김아연의 작업을 따라가다 보면 ‘조경예술가’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그의 작업은 뚜렷한 맥락을 품고 있으면서도 열린 결말처럼 사유의 자리를 남겨둔다. ‘상상의 힘’을 믿는 그는, 지금도 다음 장면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환경과조경 김하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