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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론] 칼 스타이니츠


_김영민(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



Carl Steinitz 교수

나는 칼 스타이니츠 교수를 14년 만에 만났다. 80을 넘어선 그가 노쇠해져 내 기억과는 다를까 걱정을 했으나 그는 여전히 활력에 넘쳤고, 예리했으며, 확신에 차 있었다. 나는 단호한 그의 말투를 좋아했다. 학생들이 질문을 하면 언제나 “나를 믿게(Trust me)”라고 말문을 열었고 그 말버릇은 주문 같은 효과가 있어 학생들은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간결한 대답은 한 문장을 넘어서는 경우가 드물었고 목소리는 메시지를 뇌리에 각인시키는 특이한 울림이 있었다. 그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명확히 갈렸다. 많은 이들은 그가 권위가 가득한 고전적인 계획가의 태도와 말투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젠가 사석에서 그는 자신의 첫 제자가 영어가 서툰 태국 학생이었기 때문에 가장 쉽고 간단한 단어로 크게 말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칼 스타이니츠는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그의 스승인 케빈 린치의 이론은 지금도 건축, 도시, 조경 관련 학과에서 가르치고 있지만, 스타이니츠가 1967년 린치의 이론을 바탕으로 자동화된 도시 분석 시스템을 제안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이안 맥하그가 「Design with Nature」에서 소개한 중첩분석방법은 계획가라면 누구나 알아야 할 정도로 유명하지만, 이를 오늘날 일반적으로 활용하는 컴퓨터 기반의 분석 방식으로 발전시킨 첫 사례가 1968년 스타이니츠의 ‘Delmarva’ 프로젝트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제 GIS 프로그램은 계획·설계 프로젝트의 대상지 분석과 공간정보 관련 연구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도구가 되었지만, 스타이니츠가 GIS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그가 가르친 학생들이 세계최대의 GIS 개발사인 ESRI를 설립하였다는 이야기는 생소하다. 조경가 피터 워커의 작품을 모르는 이는 드물며 1990년대 하버드 대학을 이끌면서 예술로서의 조경의 방향을 부활시킨 그의 행보는 현대 조경사의 중요한 장면을 구성한다. 하지만 당시 하바드에는 워커의 예술로서의 조경과 스타이니츠의 계획으로서의 조경이라는 두 축이 있었으며, 스타이니츠의 연구실은 한때 여느 하바드와 MIT의 이공계 연구소들보다도 컸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1968년의 DELMARVA 프로젝트 / Carl Steinitz

2006년 내가 대학원을 졸업하기 직전에 그는 공식적인 은퇴를 선언했다. 70에 가까운 나이였다. 27살에 하버드 대학교 교수로 임명되었으니 40년 넘게 한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한 셈이었다. 오랜만에 그의 소식을 들은 것은 2012년, 그의 새로운 저서 「A Framework of Geodesign」을 통해서였다. 이 책은 지금까지 그가 썼던 저술 중에서 가장 도발적인 선언을 담고 있었다. 오늘날 GIS는 괄목할 만한 기술적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 방향은 잘못되었다. 원래 주창자들은 GIS를 전통적인 조경의 개념을 바꿀 혁신적인 계획·설계의 틀로서 제시했지만, 지금의 GIS는 계획·설계와 무관한 분석과 연구의 도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동시에 그는 오늘날 계획과 설계의 관행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어처구니없게도 21세기에도 여전히 행정가들은 18세기에 시작된 고전적인 건축의 공모 방식으로 계획적 대안을 선정하고 있다. 이는 최선을 찾는 길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는 논리에 불과하며 가장 멍청한 방법으로 도시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이 책에서 그는 지오디자인을 통해 오늘날 계획과 설계 관행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잊힌 GIS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러한 선언에 가장 먼저 동조한 이들은 오히려 연구자들이었으며 곧이어 계획가들이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학계와 업계에서 GIS의 제국을 구축한 그의 옛 제자들이 호응했다. 스타이니츠의 옛 제자이자 ESRI사의 창립자인 잭 대인저먼은 2010년 지오디자인이 새로운 GIS의 미래라고 선언한다. ESRI는 GIS를 효과적인 계획·설계 프로그램으로 만들기 위해 경쟁사인 AutoDesk사와 협력 관계를 구축할 것이며, 클라우드 기반의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고 새로운 디자인 응용 도구들을 개발할 계획을 세운다. 2018년, 칼 스타이니츠는 전 세계의 학교와 기관들에게 지오디자인의 개념을 적용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함께 그 결과를 공유할 것을 제안한다. 100개가 넘는 기관이 그의 부름에 응했으며 최종적으로 27개국에서 56개의 지오디자인 프로젝트가 제출되었다. 그는 발표자 중 한 명으로 연단에 올라 그가 작업해온 런던 광역권의 계획안을 발표하였다.


Geodesign Summit의 Jack Dangermond의 발표 / ERSI


ESRI사의 GIS 기반의 디자인 프로그램 City Engine / ESRI


Unreal 엔진과 연동한 City Engine의 랜더링 / www.cgrecord.net


Carl Steinitz의 런던 광역권 계획안과 시뮬레이션 

사흘에 걸친 발표와 토론의 마지막 날 나는 시간과 주소가 적힌 작은 쪽지를 받았다. 전달한 이는 하버드의 전통적인 회합 전달 방식이라고 귀띔해주었다. 주소에 적힌 집을 찾아가 벨을 누르니 노부부가 맞이해주었다. 주인은 스타이니츠의 첫 제자 중 한 명이었으며 세계 최초로 원격탐사(Remote Sensing) 기술을 상용화한 사람 중 하나라고 했다. 모임의 주축은 이미 70대가 된 스타이니츠의 옛 제자와 동료들이었다. 그 자리는 스타이니츠를 위한 자리였지만 그동안의 긴장이 풀렸는지 스타이니츠는 몸이 좋지 않아 참석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각자의 옛 이야기를 마치고 그들은 30년이나 아래의 후배인 나에게 전공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내가 건축도 공부했지만 조경을 전공했고 지금은 조경설계를 하고 있으며 조경을 가르친다고 했다. 그들은 좋은 선택이라고, 그들도 각자 다른 분야를 공부했지만 조경을 선택하여 지금까지 조경을 해왔고, 돌이켜보면 매우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아마도 우리나라였다면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일들을 조경이라고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혁명가들이었다. 전통적인 제도판과 로트링 펜을 버리고 아직 펀치 카드를 써야 했던 조잡한 초창기 컴퓨터를 사용해서 아무도 걸어보지 않았던 새로운 계획과 설계의 길을 처음으로 내디뎠던 이들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80대의 노교수와 70대의 제자들은 그 어떤 젊은 세대보다도 혁신적 태도로, 그리고 한결같은 믿음을 갖고 50년 전에 시작되었던 혁명을 여전히 진행시키고 있다.

예전에 나는 스타이니츠 교수에게 사적인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은 학부와 대학원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도시계획 박사를 받았는데 왜 조경을 하게 되었냐고. 언제나 그랬듯이 그의 대답은 간결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To make the world better).”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부연 설명을 했다. 학창 시절 제3세계 국가들로 배낭여행을 떠났는데 그곳에서 그가 목도한 문제들은 건축과 도시계획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세계가 당면한 문제는 건축과 도시를 넘어선 인간의 정주환경과 자연을 모두 포괄하는 환경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그때 조경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나는 지금도 설계를 하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글을 쓰다가도, 수업을 하다가도, 그 질문과 그의 대답을 가끔씩 떠올린다. 그 질문 다시 나에게로 향한다.

“너는 왜 조경을 하는가?”
글·사진_김영민 교수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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