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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선] 진짜 조경은 드로잉으로만 존재한다

2022-08-09 11:30
얼마 전 한 설계사무소 소장님이 넋두리를 하셨다. 아끼던 직원이 갑자기 그만둔다고 해서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직원은 대뜸 소장님에게 “진짜 조경이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어보았다. 소장님이 머뭇거리자 직원은 자기는 그동안 사이비 조경을 해온 것 같다고, 이제 진짜 조경을 하기 위해 떠나가겠다고 선언하고 제주도에 내려갔다고 한다. 소장님은 20년 넘게 설계를 해왔는데 지금까지 자기가 해온 조경이 가짜 조경이었다는 말을 들을 줄은, 그것도 동고동락해온 직원에게 들을 줄은 몰랐다고 씁쓸하게 말씀하셨다.


“참된 조경은 드로잉으로만 존재한다(The “real landscape architecture” only exists in the drawings).” 이는 내가 아니라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이라는 건축가가 한 말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건축가가 한 말은 다음과 같다. “참된 건축은 드로잉으로만 존재한다(The “real architecture” only exists in the drawings).” 여기에 건축을 조경으로 바꾸었을 뿐이다. 건축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들은 이렇게 오해할 수도 있겠다. 아, 요새 건축은 잘 지어지는 건축보다 멋있는 이미지로 제시되는 건축이 인기인가 보다고.



그렇지 않다. 최근의 건축 동향을 한가지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현란한 이미지와 철학적 이론으로 무장한 건축보다 진솔한 물성의 건축이 대세이다. 건축가에게 최고의 영예라는 프리츠커(Pritzker) 상의 수상자들을 보면 오늘날 가장 높이 평가받는 건축이 어떠한지를 이해하기 쉽다. 올해의 수상자인 디베도 케레(Diébédo Francis Kéré), 그리고 발크리쉬나 도시(Balkrishna Doshi), 시게루 반(Shigeru Ban), 왕슈(Wang Shu)와 같은 최근의 수상자들을 보면 모두 물성과 현상의 건축을 추구하는 건축가들이다. 화려한 형태와 첨단기술보다는 물성과 디테일을 건축의 본질로 추구하는 피터 줌터(Peter Zumthor)나 헤르족 드 뮤론(Herzog de Mureon)의 건축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왜 아이젠만은 오늘날 지어지지 않는 건축만이 진실한 건축이라는 선언을 하는 것일까?


‘참된 건축’은 종이 안에서만 존재한다. ‘참된 건물’은 그림밖에 존재한다. 여기에서 차이는 ‘건축’과 ‘건물’이 같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젠만은 건축이 무엇인가에 관해서 묻고 있다. 흔히 사람들은 건축과 건물이 같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건축은 건물이 아니다. 건물은 건축의 대상이자 결과물이다. 같은 질문을 조경에 적용하자면, 사람들은 조경을 공원이나 정원과 동일시한다. 그러나 어디까지 공원이나 정원은 조경의 대상이지 조경이 아니다. 숨을 고르고 한번 생각해보라. 조경은 정원인가? 조경은 공원인가? 아니라면 조경은 대체 무엇인가?


“오늘날의 건축에는 계속되는 논쟁이 있다. 개념적, 문화적, 지적 기획으로서의 건축과 현상적 기획로서의 건축이다. 현상학적 기획으로서의 건축은 주체의 경험, 즉 물성, 빛, 색, 공간 등등의 경험에 대한 것이다. 나는 항상 이런 현상학적 건축에 반대해왔다. 나는 디테일이나, 나무의 결, 표면에서 나타나는 물성의 색 따위를 걱정하는데 시간을 쓰는 피터 줌터와 같은 이들의 작업에는 관심이 없다. 하등도 관심이 없다. 모두들 지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추구하는 “종이 건축(Cardboard Architecture)”의 개념은 ‘반-물질적(Anti-material)’ 언명이 건축의 물질적 물성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중략)



 _ 김영민 교수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https://www.lafent.com/inews/news_view.html?news_id=131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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