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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선] 젤리코 어워드와 한국조경

2023-10-1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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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김영민(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









제프리 젤리코 어워드(Sir Geoffrey Jellicoe Award)는 IFLA(세계조경가협회)가 그 삶과 업적이 인류의 사회와 환경에 큰 영향을 미쳤고, 조경계에 중요한 기여를 한 조경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조경가에게 주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 젤리코 어워드는 올해 서안의 정연선 선생님께 수여되었다. 2005년에 피터 워커(Peter Walker)가 첫 수상을 한 이후 15번째 상이며,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수상이다. 올해는 IFLA가 만들어진 지 75주년 되는 해이고, 작년이 한국조경 50주년이어서 올해 정영선 선생님의 수상은 더욱 의미가 깊다. 긴 공식적인 수상의 이유 중 일부를 직접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정영선 선생의 조경에 대한 접근은 한국의 조경설계를 선구적으로 이끌었을 뿐 아니라 서양에서 유래한 조경의 낯선 개념을 한국적 토양과 경관에 맞게 해석하였다…… 한국에서 조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였을 때 정영선 선생은 주요 프로젝트를 통해서 조경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수상의 이유가 말해 주는 것처럼 정영선 선생님이 걸어온 길은 한국의 조경이 걸어온 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영선 선생님이 태어난 1941년에는 아직 대한민국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선생님이 대학을 졸업한 1965년에 아직 조경이라는 분야는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선생님이 대학원에 입학한 1973년은 이 땅에 조경이라는 학문이 처음 성립된 해였고 선생님은 조경학과의 첫 졸업생이었다. 1984년 진행한 아시아선수촌 아파트와 예술의 전당은 아직 조경이 양적으로 녹지를 조성하기 위한 용역이었을 때 처음으로 조경이 설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1997년 희원은 한국성이라는 개념이 오늘날의 조경에 어떻게 해석되고 구현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고, 2002년의 선유도공원과 청계천은 조경이 도시계획의 틀에 갇히지 않고 도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을 보여준 프로젝트였다. 근래 선생님의 프로젝트들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한국조경의 현주소와 앞으로 한국조경이 가야 할 길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이러듯 지난 50년 한국조경의 역사는 정영선이라는 한 인물이 걸어온 길을 통해 드러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어워드는 정영선 선생님 개인에게 주는 상이면서 조경의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불모지였던 한국이라는 나라가 조경을 통해 이룬 성과에 대한 상찬이기도 한 것이다.



정영선 선생님의 15회 제프리 젤리고 어워드 수상



서안의 희원


이 기쁜 축하의 자리에서 선생님과 한국조경에 대한 인정은 한편으로 다음 세대의 조경가에게 엄중한 질문과 과제를 던지고 있다. 조경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후배들은 선배들을 비판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국의 첫 조경가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조경의 영역을 세웠고, 지금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훌륭히 만들기까지의 노고와 열정에 충분한 찬사와 박사를 보내야 한다. 선배들은 그들이 살아온 시대의 소명을 충분히 완성하셨다. 물론 후배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않을 것이다. 불완전한 현실의 완벽한 투영이기에 현실은 항상 불만족스럽다. 그 불만족스러움의 원인을 내가 아닌 다른 이에게 전가하기란 쉽다. 그런데 그런 과연 그 다음 세대의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한국 조경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지금의 젊은 소장과 교수, 그리고 지금 조경계에 몸을 담고 있는 실무진들이 치열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지금도 업무에 치이면서도 제도적인 한계를 극복하려고 고군분투하고, 억지스러운 발주처의 요구를 맞추어가면서 훌륭한 작품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노력하여 보여주는 우리 조경의 지향점이 어디인지를 이번 정영선 선생님의 어워드 수상과 이플라 75주년, 한국조경의 50주년을 맞이하여 고민해야 한다. 어워드가 정의하는 지향점은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명확하다. “인류의 사회와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고, 조경계 전체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조경”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조경이다. 우리가 좋은 작품을 하고 좋은 연구를 하는 이유가 단순히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된다든가, 직원들의 월급을 풍족하게 주고 즐겁게 조경을 하는 것이 우리가 조경을 하는 지향점이어서는 안된다. 물론 조경을 통해 부자가 되고 행복하게 즐겁게 조경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조경을 해서 얻게 되는 효과이지, 조경의 지향점이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다음 젤리코 어워드를 준비해야 한다든가, 한국조경이 더 많은 상을 받고 해외 매체에 실려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타인의 인정을 내 모든 욕망의 전부로 갈구하는 것만큼 비루한 것은 없다.


정영선 선생님이 조경을 시작했을 당시 우리는 풍족한 나라가 아니었다. 문화적으로 역량이 강건한 나라도 아니었으며 조경이 제대로 자라 잡은 나라도 아니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우리의 조경은 인류의 사회와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고 조경계에 중요한 이바지를 할 수 있었다. 많은 나라가 풍족하지 않았으며 문화적 역량이 보잘것없고 조경이 자리 잡지 못했었으니까. 우리가 성공하는 것 자체가 다른 이들의 희망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과거의 한국과 같지 않다. 우리 조경의 지향점 역시 과거와 같을 수도 없고, 같아서도 안 된다. 누군가는 반문할 수도 있다. 한국이 잘살게 되었다고 해서 조경가들이 그만큼 풍족하고 여유로워진 것은 아니라고. 여전히 실무의 전선은 여의치가 않고 발주처의 요구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버겁다고. 정당한 반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시 물어보겠다. 과연 우리는 여유가 있고 풍족해야만 인류의 사회와 환경을 생각하고 조경계 전체를 생각할 수 있는가? 아니다. 여유와 지향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번 2023년 IFLA의 첫 기조 발표자는 케냐 출신의 아데아(Arthur Adeya)였다. 그는 지난 15년간 전 세계의 극빈층 주거지, 즉 슬럼의 환경을 바꾸어온 콘쿠이(Konkuey)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아데아는 나의 대학원 동기였고, 콘쿠이 프로젝트는 여섯 명의 하바드 대학원생들이 학교의 여행 장학금을 받아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지금 그중 누군가는 교수가 되었고, 누군가는 저명한 설계사무실의 프로젝트 책임자가 되었다. 누군가는 자기 나라 최고의 조경가가 되었고 누군가는 그 프로젝트를 발전시켜 더 많은 슬럼의 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그들 모두 지금의 위치에서 향하는 지향점이 학생 때 추구했던 콘쿠이의 지향점과 다르지는 않다. 당연히 학생으로 그 지향점을 선언하였을 때 그들은 부유하지도 여유롭지도 않았다. 그리고 지금의 그들이 우리보다 더 부유하고 여유롭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 지향이 그들의 조경을 차별화할 수 있는 힘이었고, 15년이 지나서 부자 나라의 설계비가 더 높은 조경가들 보다 그들의 조경에 세계가 주목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