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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포럼] 땅을 파면 조경이 나온다

2025-04-02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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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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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생활 동안 나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경험을 꼽으라면 단연코 환경조경나눔연구원의 녹색나눔봉사단 활동이다. 전국의 조경학과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봉사라는 활동을 통해 서로 배우고 성장하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처음 봉사단에 지원했을 때는 단순히 조경을 몸으로 경험해보고 싶다는 가벼운 마음이었지만, 삽을 들고 처음 흙을 파낼 때의 서툰 손길과 작업이 끝난 후 흙 묻은 장갑을 벗으며 느꼈던 작은 성취감, 그리고 함께 고생한 단원들과 나눈 웃음들이 어느새 내 대학 생활의 가장 소중한 한 부분이 되어 있었다.

처음 조경을 전공하기로 결정했을 때, 나에게 조경은 도시 속 녹지를 만들어가는 일이라는 막연한 이미지였다. 하지만 대학 생활을 거치며 많은 스튜디오 수업과 이론을 배우면서도, 정작 실질적으로 손을 움직여 경험해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 녹색나눔봉사단을 통해 조경을 실천하고,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첫 봉사활동 날, 장갑을 끼고 삽을 잡았을 때 손에 닿는 흙의 감촉이 생경했다. 강의실에서 도면을 그리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실감이었다. 삽을 움직이며 땅을 고르고 식물을 심는 동안, 이 작은 행동들이 쌓여 하나의 공간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활동을 마치고 흙 묻은 장갑을 벗으며 마주한 동료들의 얼굴에는 같은 뿌듯함이 서려 있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기분은 이상하게 상쾌했다. ‘이게 조경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는 점점 더 큰 흐름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녹색나눔봉사단의 가장 큰 장점은 전국의 조경학과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교류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봉사활동을 위해 모인 학생들은 각자 다른 지역과 학교에서 왔지만, ‘조경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통해 금세 친해졌다. 함께 구덩이를 파고, 삽질을 하며 흙을 나르다 보면, 지금 어떤 수업을 듣고 있는지에 대한 가벼운 질문부터 조경 신문사에서 다루고 있는 중요 현안 같은 진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시각을 공유했다.

그리고 학생들과의 교류가 조경을 배우는 시각을 넓혀주었다면, 어린이 조경학교 보조교사, 정원 유지보수, 조경 행사 운영 등의 활동은 조경이 사람들과 공간을 연결하는 힘을 직접 체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어린이 조경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공원을 돌아보며 공간을 설계해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때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빛과 말들은 아직도 생생하다. “여기에 나무 그늘이 있으면 숨바꼭질하기 좋을 것 같아요!” 아이들은 단순히 공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 공간에서 어떤 놀이와 활동이 가능할지를 떠올렸다. 그들의 시선에서 조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행동을 이끌어내는 무대가 되어준다는 것. 이렇게 조경이 사람들의 경험과 관계를 형성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공간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무엇을 느끼는지에 따라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

도시가 점점 개인화되고 고립된 환경이 되어가는 지금, 자연을 접하고 계절의 변화를 체험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조경은 단순히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휴식과 영감을 제공하는 실천적 영역이 되어야 한다. 조경 공간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소통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이 변화는 조경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교류와 협력에서 시작될 것이다. 환경조경나눔연구원의 녹색나눔봉사단이 첫 발걸음이 되어 앞으로도 많은 조경학도들이 조경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사회적 역할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다양한 경험을 쌓고, 다른 전공 분야와도 소통하며 조경의 역할을 넓혀가는 기회가 더욱 많아지길 기대한다. 조경은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닌, 도시와 삶을 설계하는 본질적인 요소로 자리 잡아야 한다.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하며, 새로운 시각으로 공간을 바라보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실천해야 한다. 조경이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실천적 도구임을 인식하고 이를 현실로 만들어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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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영 / 제11기 대학생녹색나눔봉사단 대표, 서울시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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