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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꽃그늘의 그늘…여의도 왕벚나무, 매년 열 그루 이상 죽어간다

2022-04-22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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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벚나무 수명 100년 안되는데 80살 넘은 노거수 750그루 남아
생육 좋지 않은데다 곳곳이 썩어 “수분부족 심각…피복 등 관리를”





지난 7일 오후 여의서로(윤중로)의 한 왕벚나무. 썩은 줄기 한쪽이 잘려 있다.

지난 7일 오후 여의서로(윤중로)의 한 왕벚나무. 썩은 줄기 한쪽이 잘려 있다.




매년 봄 꽃잔치가 벌어지는 서울 국회의사당 인근 왕벚나무길(여의서로). 벚나무길은 전국 곳곳에 많지만 왕벚나무길처럼 여든살이 넘는 한 아름도 넘는 굵기의 노거수들이 줄지어 있는 곳은 드물다.



지난 7일 오후 2시 <한겨레>는 서울환경연합과 이 길을 둘러봤다. 화려한 꽃들을 뽐내고 있었지만, 큰 나무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프지 않은 것을 찾기 힘들 정도로 대부분 상태가 안 좋았다. 나무들은 어김없이 ‘외과수술’로 한쪽 면이 검고 매끈하게 처리돼 있었다. 조경 쪽에서는 썩은 부분을 긁어낸 뒤 해당 부위를 톱밥·우레탄 등을 섞은 물질로 채우는 일을 ‘외과수술’이라고 한다. 한그루 한그루 지나칠 때마다 썩어서 속살을 드러내 조만간 외과수술을 기다리는 줄기, 곰팡이가 붙어 있는 줄기 등이 확인됐다. 이미 썩을 대로 썩어 한쪽 줄기가 잘린 나무들도 적지 않았다.


이 길을 관리하는 김종비 영등포구 푸른도시과장은 “나이 든 나무들은 대부분 생육상태가 안 좋아 썩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매년 영양분을 주입하는 등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있지만 500년 이상 살아가는 소나무·느티나무와 달리 왕벚나무는 수명이 100년이 안 돼 이미 수명이 다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의동로와 여의서로에 ‘벚꽃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건 1968년 수령 30~35년 된 왕벚나무 1440그루를 심으면서부터였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죽었고, 750그루 정도가 남아 있는데 매년 10주 이상씩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왕벚나무길 벚나무 1810그루 중 40%가 이런 노거수이다.









지난 7일 오후 여의서로(윤중로)의 한 왕벚나무. 버섯들이 썩은 부위를 덮었고, 위쪽 썩은 부위는 아예 떨어져 나가 있다.

지난 7일 오후 여의서로(윤중로)의 한 왕벚나무. 버섯들이 썩은 부위를 덮었고, 위쪽 썩은 부위는 아예 떨어져 나가 있다.




환경단체는 이곳 나무들의 노화와 생리장해가 극심한 수분 부족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날 서울환경연합과 <한겨레>가 국회의사당 6번 출구 맞은편 노거수 4그루를 골라, 뿌리 쪽 흙을 10㎝ 파낸 뒤 테로스11이라는 장비로 토양수분 함량을 측정했다. 일부 토양은 식물이 시들었을 경우 다시 물을 주어도 회복할 수 없는 극단적인 수분 부족 상태인 ‘영구위조점’으로 의심됐다. 이날 측정한 이 네 지점의 수분 함량은 5.6~10.4%였다. 테로스11의 국내 판매사는 <한겨레> 문의에 “양토(농경에 적합한 토양)를 기준으로 수분 함량 8.7% 이하는 위조점을 넘어 ‘영구위조점’”이라고 설명했다. 한강 쪽 여의서로에 낙엽으로 덮여 있는 산수유나무 쪽 흙을 같은 장비로 측정해보니 토양수분 함량은 27.2%로 나타났다.




지난 7일 오후 여의서로(윤중로)의 한 왕벚나무. 썩은 부분을 긁어내고 우레탄과 톱밥 등을 섞어 바르는 ‘외과수술’이 진행된 부위가 눈에 띈다.

지난 7일 오후 여의서로(윤중로)의 한 왕벚나무. 썩은 부분을 긁어내고 우레탄과 톱밥 등을 섞어 바르는 ‘외과수술’이 진행된 부위가 눈에 띈다.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전문위원(조경학 박사)은 “왕벚나무 뿌리 주변이 유기물 등으로 덮여 있지 않고 공기 중에 그대로 노출돼 메말라 있어 극심한 수분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공기를 잘 통하게 하려고 박아놓은 유공관이 이런 수분 스트레스를 심화시키는 것으로 의심된다”며 “우레탄 등으로 상처를 덮는 것은 보기에는 좋지만, 나무가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여의도 왕벚나무들이 죽어가는 것을 수분 스트레스만의 문제로 볼 순 없겠지만, 그동안 큰 예산을 들인 외과수술을 하는 등의 수목 정책을 재검토해야 하고, 피복 등 나무 생육의 기본인 적절한 수분 공급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봉호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는 “영등포구 설명대로 100년 정도인 나무들 수명이 다한 측면이 클 것”이라면서도 “도로 쪽에 바짝 붙어 있는 왕벚나무들의 뿌리 반 정도는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로 보인다. 수분 흡수 능력이 크게 떨어져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왕벚나무 주변에 사람들이 통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게 안 되면 벚꽃축제를 한 뒤 나무 주변 흙을 뒤엎어주는 관리라도 필요하다. 지자체들은 공원 등의 각종 장식에는 돈을 써도, 나무 생육환경 개선을 위한 예산은 전혀 편성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지난 7일 오후 여의서로(윤중로)의 한 왕벚나무가 심어진 토양의 수분을 측정해보니 측정치는 ‘2037.3RAW’로 나타났다. 이를 퍼센트로 환산하면 9.5%다. 양토 기준으로 영구위조점, 즉 물을 다시 줘도 살아날 수 없는 수분함량이 8.7%라는 점으로 미뤄 이 땅이 얼마나 메말라 있는지 알 수 있다.

지난 7일 오후 여의서로(윤중로)의 한 왕벚나무가 심어진 토양의 수분을 측정해보니 측정치는 ‘2037.3RAW’로 나타났다. 이를 퍼센트로 환산하면 9.5%다. 양토 기준으로 영구위조점, 즉 물을 다시 줘도 살아날 수 없는 수분함량이 8.7%라는 점으로 미뤄 이 땅이 얼마나 메말라 있는지 알 수 있다.




글·사진 김양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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